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앙시앵 레짐 (문단 편집) === 제3신분(일하는 자) === [[인구]]의 2%도 안 되는 왕족과 1,2신분인 귀족이랑 성직자를 제외한 약 98%의 프랑스 국민들이다. 제3신분의 대다수는 농촌의 농민들로 약 2,700만 명이었다. 이 농민들은 가장 많은 부담을 지고 있었으며 가장 큰 억압을 받고 있었다. 하지만 농민 대신에 주도층이 된 건 도시에 거주하는 [[부르주아]]였다. 당시 프랑스에서 부르주아는 [[교육]]을 많이 받았으며 생활수준이 높았고 그 지식이나 능력에 있어서 귀족과 경쟁할 수 있었지만[* 사실 이미 지식과 능력에서 귀족을 능가하는 이들도 많았다. 이들도 절대왕정이 잘 유지되던 시대엔 자신의 능력과 재산을 바탕으로 귀족이 될 수 있었지만 미리 진출한 부르주아 출신의 법복귀족들이 [[사다리 걷어차기]] 하면서 울분이 쌓이게 되며 프랑스 대혁명으로 분노가 제대로 폭발했다.] 신분제 때문에 [[세금]]을 제대로 내고도 혜택은 하나도 없고 억압을 받고 눌려지내는 것에 큰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삼부회 대표를 뽑을 때 다층적 [[간접선거]]를 하면 부르주아가 제3신분을 대표하였다. 그러나 제3신분은 숫자가 많은 만큼 다양한 층위를 이루었다. 크게 도시민인 부르주아와 지방민인 농민으로 나누어지지만 사실 농민들도 토지 소유에 따라서 부농과 자영농부터 빈농까지 있었다. 그러나 같은 부담과 일치된 이해관계가 존재하는 농민보다 부르주아의 층위는 더 다양했다. 특히 대농장주, 무역상, 금융업자와 같은 귀족에 가까운 부르주아도 있었고 [[변호사]]나 [[교수]], [[의사]] 같은 학자 계층과 도시의 소상인이나 제조업자 같은 도시 경제의 하층에 속하는 이들도 있었다. 이 다양한 층위는 프랑스 혁명에서 복잡성을 띄게 만드는 원인이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